제12-3부: 이라크 침공 (2003년)
2003년 3월에는 이라크가 대량 살상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테러 조직과 연계되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했다.
대량 살상 무기 의혹과 미국의 주장
9.11 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는 테러를 지원하거나 대량 살상 무기를 개발하는 국가들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이들에 대한 선제 공격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은 이러한 미국의 주요 타깃 중 하나였다. 미국은 이라크가 화학 무기, 생물 무기는 물론 핵무기 개발 계획까지 가지고 있으며, 이는 국제 사회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고 주장했다. 콜린 파월 당시 국무장관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 보유 증거를 제시하며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테러 조직과의 연계성 주장
미국은 이라크가 알카에다를 비롯한 국제 테러 조직과 연계되어 있으며, 이들에게 은신처와 자금, 훈련 등을 제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비록 9.11 테러와 직접적인 연관성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부시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 정권이 테러리즘의 확산을 조장하고 있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주장은 이라크 침공을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의 전쟁"의 연장선상에서 정당화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국제 사회의 반응과 반대
미국의 이라크 침공 계획은 국제 사회의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미국이 요청한 이라크 침공 결의안을 채택하지 않았고, 프랑스, 독일 등 주요 우방국들조차 미국의 일방적인 군사 행동에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국제 사회는 이라크의 대량 살상 무기 보유 증거가 불충분하며, 군사적 개입보다는 외교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라크 침공 작전 개시 및 바그다드 함락
국제 사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2003년 3월 20일 "이라크 자유 작전(Operation Iraqi Freedom)"이라는 이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영국, 호주 등 일부 국가들이 미국 주도의 연합군에 참여했다. 압도적인 군사력을 앞세운 연합군은 빠르게 이라크 영토를 진격했고, 4월 9일에는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를 함락시키며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다.
침공 이후의 혼란과 새로운 도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이후 이라크는 심각한 혼란에 빠졌다. 치안 부재, 종파 간 갈등, 저항 세력의 발호 등으로 인해 이라크는 극심한 불안정 상태에 놓였다. 미국은 이라크에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막대한 군사력과 자원을 투입했지만, 상황은 쉽게 안정되지 않았다. 또한, 미국이 침공의 주요 명분으로 내세웠던 대량 살상 무기는 결국 발견되지 않아 미국의 이라크 정책에 대한 국제적인 비판이 더욱 거세졌다.
제12-3부 마무리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주도한 "테러와의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대량 살상 무기 보유 및 테러 조직 연계라는 명분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국제 사회의 반대 속에서 강행되었으며, 사담 후세인 정권의 붕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하지만 침공 이후 이라크는 장기간의 혼란과 폭력 사태에 시달렸고, 미국의 이라크 정책은 많은 논란과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세계의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2-4부: 오사마 빈 라덴 추적 작전 (0) | 2025.03.21 |
---|---|
제12-2부: 연도별 대테러 전쟁의 시작 - 아프가니스탄 (2001년) (0) | 2025.03.21 |
제12-1부: 시간대별 9.11 테러 - 미국의 안보 개념을 뒤흔든 하루 (0) | 2025.03.21 |
제15부: 바이든 시대 - 미국의 새로운 방향 모색 (2021년 이후) (0) | 2025.03.21 |
제14부: 트럼프 시대 - 미국 우선주의와 국제 질서의 재편 (2017-2021) (0) | 2025.03.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