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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문제

90만 난민의 절규: 로힝야족 난민촌의 참혹한 현실

by 다시쓰는세계사 2025.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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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로힝야족: 끝나지 않는 비극, 강대국의 외면, 그리고 희망의 손길 

로힝야족미얀마 서부 라카인주에 거주하는 무슬림 소수 민족이다. 이들은 수세기 동안 고유한 문화와 역사를 지켜왔으나, 미얀마 정부로부터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하고 오랜 기간 심각한 차별과 박해를 겪어왔다. 본 글에서는 로힝야족이 겪고 있는 비극의 역사적 흐름, 특히 영국 식민 통치가 이들에게 미친 영향, 이에 대한 강대국들의 복잡한 입장, 그리고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도록 도움을 주는 전 세계의 노력들을 연대순으로 재구성하여 살펴본다.

 

 

역사 속 로힝야족의 비극과 영국 식민 통치의 그늘

1826년, 영국은 제1차 영국-버마 전쟁에서 승리하며 아라칸을 식민지로 편입했다. 영국은 식민 통치 기간 동안 경제 발전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고, 이를 위해 인도 아대륙, 특히 현재의 방글라데시 지역에서 많은 노동력을 버마로 이주시켰다. 아라칸 지역은 비옥한 토지를 바탕으로 쌀 생산이 활발했기에, 노동력 확보를 위한 이주가 적극적으로 장려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상당수의 무슬림들이 아라칸으로 이주하여 로힝야족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더욱이 영국은 식민 지배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소수 민족을 활용하는 분할 통치(Divide and Rule) 전략을 종종 사용했는데, 버마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났다. 영국은 다수 민족인 버마족의 민족주의 운동을 견제하기 위해, 소수 민족인 로힝야족을 포함한 다른 민족 집단들을 행정 및 치안 분야에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등용했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이는 식민 통치 기간 동안 로힝야족에게 일정 부분의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것처럼 보였을 수 있지만, 독립 이후 다수 민족인 버마족과의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즉, 영국 식민 통치 하에서 경제적인 이유로 인한 이주와 더불어, 소수 민족 우대 정책으로 인해 로힝야족은 버마 사회 내에서 '외부인' 또는 '영국에 협력한 세력'으로 인식되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이다.

 

1948년, 버마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이러한 식민 시대의 유산은 로힝야족에 대한 차별의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 독립 이후에도 아웅산 수치 여사의 아버지인 아웅산 장군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은 민주 국가 건설을 위해 노력했으나, 로힝야족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못했다. 1962년, 네윈 장군의 군사 쿠데타로 군부 독재가 시작되면서 로힝야족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군부는 로힝야족을 불법 이민자로 규정하고 시민권을 박탈하는 등 조직적인 차별과 탄압을 가했다.

 

1978년, 군부는 '나가 민 작전'을 펼쳐 수많은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하는 첫 번째 대규모 강제 이주가 발생했다. 1982년, 미얀마는 새로운 시민권법을 제정하여 대부분의 로힝야족을 무국적자로 만들었다. 1988년, 전국적인 민주화 항쟁이 발생하자 아웅산 수치 여사는 해외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여 민주화 운동의 선두에 섰다.

 

1989년, 군부 정권은 국명을 버마에서 미얀마로 공식 변경했다.

1990년,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압승을 거두었으나, 군부는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권력을 유지했으며, 아웅산 수치 여사를 가택 연금했다. 1991-1992년, 또 다른 대규모 군사 작전으로 인해 약 25만 명의 로힝야족이 방글라데시로 피난했다.

 

21세기, 더욱 심화되는 비극과 군부의 재집권

2012년, 라카인주에서 불교도와 로힝야족 간의 심각한 폭력 사태가 발생하여 많은 사상자와 이재민이 발생했다.

2015년, 총선에서 NLD가 압승을 거두며 아웅산 수치 여사가 이끄는 문민정부가 출범했으나, 군부의 영향력은 여전했다. 2016년, 국경 지역에서 발생한 무장 단체 공격 이후 미얀마군은 대규모 군사 작전을 펼쳐 로힝야족 마을에 큰 피해를 입혔다.

2017년 8월, 로힝야족 무장 단체의 공격을 빌미로 미얀마군은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감행하여 수많은 로힝야족이 학살당하고 방글라데시로 70만 명 이상이 피난하는 인도주의적 위기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국가자문역이었던 아웅산 수치 여사는 국제 사회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 국제적인 논란을 야기했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 군부는 2020년 총선 결과에 불복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했다. 군부는 아웅산 수치 여사를 비롯한 문민정부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강대국들의 엇갈린 시선과 세계적인 연대의 손길

로힝야족 문제에 대한 국제 사회의 반응은 복잡하다. 미국, 유럽연합(EU), 유엔 등은 미얀마 군부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며 제재와 인도주의적 지원을 병행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미얀마의 주요 경제 파트너로서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방글라데시는 인도주의적 위기에 직면하여 국제 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배우 이영애, 정우성 씨,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 케이트 블란쳇, 노벨 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유사프자이, 프란치스코 교황 등 세계적인 인사들이 로힝야족 난민촌을 방문하여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인도주의적 지원 활동에 참여하며 연대감을 표하고 있다.

 

 

난민촌의 참혹한 현실과 난민들의 힘겨운 삶

현재 방글라데시 난민촌에는 90만 명이 넘는 로힝야족 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비좁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기본적인 생존조차 위협받는 힘겨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깨끗한 물과 위생 시설 부족, 영양실조, 의료 서비스 접근의 어려움, 그리고 잦은 자연재해는 난민들의 고통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특히, 폭력과 학살의 트라우마를 겪은 여성과 어린이들은 심각한 정신적 고통 속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가고 있다. 교육 기회 부족으로 인해 아이들은 제대로 된 배움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어른들 역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극심한 빈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년 찾아오는 몬순 우기와 사이클론은 난민촌을 더욱 위험한 곳으로 만들며,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위협적인 존재이다.

 

결론

미얀마 로힝야족 문제는 복잡한 역사적, 정치적 상황 속에서 발생한 비극이며, 특히 영국 식민 통치 시기의 정책과 그로 인한 사회적 갈등 심화가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얀마 군부의 오랜 독재와 국제 사회의 미온적인 대처 또한 심각한 인권 위기를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전 세계의 관심과 연대, 그리고 실질적인 해결책 마련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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