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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사회문제

강대국들의 그림자: 쿠르드족, 팔레스타인, 그리고 대한민국

by 다시쓰는세계사 2025.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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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르드족: 분단된 민족의 역사, 끝나지 않는 독립의 꿈

중동의 심장부에 자리한 쿠르드족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민족이다. 인도-유럽 어족의 이란어 계통에 속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현재 터키 동남부, 이란 북서부, 이라크 북부, 시리아 북동부에 걸쳐 광범위하게 거주하며 독특한 문화와 사회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본 글에서는 쿠르드족의 기원부터 시작하여 독립 국가 건설의 염원, 현재 직면한 문제점, 그리고 이들의 운명에 깊숙이 관여해 온 세계 강대국들.

 

고대 문명의 흔적, 독립을 향한 끊임없는 열망

쿠르드족의 역사는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7세기에서 6세기경 번성했던 메디아 왕국쿠르드족의 중요한 조상으로 여겨진다. 이후 1299년부터 1922년까지 존속한 오스만 제국을 포함한 여러 제국의 지배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쿠르드족은 고유한 문화적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왔다. 이들에게 쿠르디스탄이라 불리는 자신들의 땅은 단순한 거주지를 넘어 민족적 자긍심의 원천이며, 독립 국가 건설의 꿈은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타올랐다.

 

강대국들의 손에 갈라진 운명

하나의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쿠르드족은 아이러니하게도 외부 세력의 결정에 의해 자신들의 땅이 여러 국가로 나뉘는 비극적인 역사를 맞이했다. 1914년부터 1918년까지 벌어진 제1차 세계대전은 오스만 제국의 붕괴를 초래했고, 전후 처리 과정에서 승전국인 연합국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중동 지역의 국경선을 인위적으로 설정했다. 그 결과,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던 지역은 터키, 이란, 이라크, 시리아의 영토로 강제 분할되어 각각의 나라에 편입되었다. 1920년 체결된 세브르 조약에서 쿠르디스탄 자치 지역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1923년 터키 공화국 건국 후 체결된 로잔 조약에서 이는 완전히 무효화되었다. 이는 쿠르드족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으며, 오늘날까지도 해결되지 않은 쿠르드족 문제의 핵심 원인이 되었다.

 

지정학적 이해관계 속 희생된 민족

역사 속에서 쿠르드족은 종종 강대국들의 전략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이용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은 오스만 제국을 약화시키기 위해 쿠르드족에게 자치권을 약속하며 봉기를 부추겼지만, 전쟁이 끝난 후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소련이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쿠르드족을 지원하거나 방치하는 등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활용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에서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 축출을 위해 쿠르드 자치 정부의 군사 조직인 페쉬메르가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2011년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에는 IS 격퇴를 위해 미국이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를 지원하면서 터키와의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강대국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쿠르드족을 이용했지만, 쿠르드족의 오랜 염원인 독립 국가 건설에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강제 분단의 아픔, 되풀이되는 역사

쿠르드족의 분단은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1917년 영국의 밸푸어 선언 이후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이 추진되면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땅에서 쫓겨나 난민이 되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의 단초가 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인 1945년, 한반도는 일본의 항복 이후 미국과 소련의 군정 하에 38선을 기준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었고, 1950년 발발한 6.25 전쟁을 거치며 그 분단은 더욱 고착화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외부 강대국들의 결정과 개입은 한 민족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오랜 기간 동안 깊은 상처와 갈등을 남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쿠르드족이 직면한 과제

오늘날 쿠르드족은 자신들이 거주하는 각 국가에서 정치적 소외와 차별, 경제적 불평등, 그리고 인권 문제 등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특히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 내 IS의 발호는 쿠르드족 거주 지역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으며, 독립을 향한 염원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과제로 남아있다.

 

세계의 시선, 강대국들의 복잡한 셈법

쿠르드족 문제는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닌, 국제 사회 전체의 관심사가 되었다. 미국은 대테러라는 명분 아래 쿠르드족과 협력했지만, 나토 동맹국인 터키와의 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러시아는 중동 지역에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쿠르드족 문제를 활용할 수 있지만, 지역 불안정을 야기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유럽 주요국들은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내세워 쿠르드족의 권익을 옹호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기존 국가들의 주권 또한 존중해야 하는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결론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쿠르드족은 강대국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분단과 이용이라는 아픔을 겪어왔다. 이는 팔레스타인대한민국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외부 세력에 의한 강제적인 국경선 설정이 얼마나 깊고 오랜 상처를 남길 수 있는지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다. 현재에도 다양한 문제에 직면해 있는 쿠르드족의 염원이 평화적인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 국제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과 현명한 해법 모색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참고 자료

  • 사이크스-피코 협정 (Sykes-Picot Agreement):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916년 5월 16일 영국과 프랑스가 러시아의 동의 하에 체결한 비밀 협정으로, 오스만 제국 패망 이후 중동 지역을 영국과 프랑스의 세력권으로 분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협정은 오늘날 중동 국경선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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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로잔 조약 (Treaty of Lausanne): 1923년 7월 24일 스위스 로잔에서 체결된 평화 조약으로,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과 연합국 간의 갈등을 공식적으로 종결하고 현대 터키의 국경을 확정했다. 이 조약은 이전의 세브르 조약을 대체했으며, 쿠르드족에게 약속되었던 자치 지역에 대한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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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밸푸어 선언 (Balfour Declaration): 1917년 11월 2일 영국 외무장관 아서 제임스 밸푸어가 시오니즘 연맹의 월터 로스차일드에게 보낸 서한으로, 영국 정부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을 위한 국민적 고향을 건설하는 것을 호의적으로 보고 있으며, 이를 촉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단, 팔레스타인 내 비유대인 공동체의 시민적, 종교적 권리와 다른 나라에 거주하는 유대인의 권리 및 정치적 지위에 prejudice를 주지 않는다는 조건이 명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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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츠담 선언 (Potsdam Declaration) 관련 내용: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 중화민국이 발표한 선언으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제8항에서 "카이로 선언의 조항은 이행되어야 하며, 일본은 점령한 다른 모든 영토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라고 명시함으로써 카이로 선언(1943년)에서 약속된 한국의 독립을 재확인했다. 종전 후, 이 선언에 따라 한반도는 38도선을 기준으로 미국과 소련이 분할하여 군정을 실시하게 되었고, 이는 남북 분단의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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