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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워
미국과의 전쟁이 끝난 이라크. 종파분쟁이 격화되고, 내전으로 치달으면서 이라크의 치안을 담당하고 있는 미군의 사상자 수는 점점 늘어간다. 한편, 타일러 잭슨을 비롯한 미 순찰대원들은 무장 게릴라들로부터 공격을 당해 부상자가 발생하여 병원으로 후송하지만, 그곳에서 다시 적들을 만나고 총격전 끝에 그들을 물리친다. 하지만 부대로 돌아가는 길 도처에서 자살폭탄과 차량폭탄, 저격병들의 위협에 부상자들이 또다시 늘어나고, 마침내 게릴라들에게 포위 당한 그들은 마지막 생존을 위한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 평점
- 5.0 undefined
- 감독
- 시드니 J. 푸리에
- 출연
- 커티스 모건, 잰 캘라브레타, 조단 브라운, 에디 델라 시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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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부: 새로운 질서 속의 갈등 - 1990년대 미국의 역할과 개입 (1990-2000)
1990년대는 냉전 종식 이후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며 새로운 국제 질서를 주도한 시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갈등과 위기가 발생했고, 미국은 이러한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자국의 역할을 모색해야 했다.
1990년
-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8월):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걸프 위기가 발발했다. 미국은 즉각적으로 이라크의 침략을 규탄하고 다국적군 결성을 주도했다.
1991년
- 걸프 전쟁 (1월 - 2월):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이 "사막의 폭풍" 작전을 통해 이라크를 공격하여 쿠웨이트를 해방시켰다. 이는 냉전 종식 후 미국이 주도한 첫 번째 대규모 군사 개입이었다.
1992년
- 보스니아 내전 발발: 유고슬라비아 연방 해체 과정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세르비아계, 크로아티아계, 보스니아계 무슬림 간의 심각한 민족 갈등이 시작되었다. 국제 사회는 이에 대한 개입 여부를 놓고 논쟁했다.
1993년
- 뉴욕 세계무역센터 폭탄 테러 (2월): 알카에다의 전신으로 알려진 테러 조직이 뉴욕 세계무역센터 지하 주차장에서 폭탄 테러를 감행하여 미국 사회에 테러 위협을 각인시켰다.
1994년
- 아이티 군사 개입 (9월): 미국은 아이티에서 쿠데타로 축출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 대통령의 복귀를 위해 군사 개입을 단행했다.
1995년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데이턴 협정 체결 (12월): 미국은 보스니아 내전 종식을 위한 데이턴 협정을 중재하여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평화를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
1998년
- 미국 동아프리카 대사관 폭탄 테러 (8월): 케냐와 탄자니아에 있는 미국 대사관들이 알카에다의 공격을 받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이는 미국에 대한 국제 테러리즘의 위협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1999년
- 코소보 전쟁 (3월 - 6월): 코소보에서 발생한 세르비아군의 알바니아계 주민에 대한 인종 청소를 막기 위해 나토(NATO)가 미국 주도로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에 대한 공습을 감행했다. 이는 인도주의적 개입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1990년대 (전반적인 내용)
- 나토 확장: 냉전 종식 이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 동유럽 국가들이 나토에 가입하면서 나토의 영향력이 동쪽으로 확대되었다. 이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긴장을 야기했다.
- 미국의 역할 논쟁: 미국은 1990년대 동안 세계 곳곳의 분쟁에 개입하면서 자국의 역할에 대한 국내외적인 논쟁에 직면했다. 인도주의적 개입의 필요성과 주권 침해의 문제, 미국의 국익 우선주의 등이 주요 쟁점이었다.
- 한국의 상황: 1990년대 한국은 민주화 이후 정치적 안정을 이루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북한 핵 문제는 지속적인 안보 위협으로 남아있었다. 미국은 한미 동맹을 유지하며 한국의 안보를 지원하고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을 함께 했다.
제11부 마무리
1990년대 미국은 냉전 종식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국제 질서 유지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갈등과 도전에 직면했다. 걸프 전쟁, 발칸 반도 개입 등에서 미국의 군사적, 외교적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었지만, 테러리즘의 부상과 나토 확장으로 인한 러시아와의 관계 변화 등 새로운 안보 환경에 대한 고민도 깊어졌다. 미국은 자국의 이익과 세계 평화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모색하며 1990년대를 보냈다.
1990년대 한국은 민주화 이행 이후 문민정부 시대를 맞이하며 정치적 안정화에 힘썼다. 경제적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를 겪으면서 큰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다. 이는 한국 경제 체질 개선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안보적으로는 북한의 핵 개발 의혹이 제기되면서 한반도의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미국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바탕으로 한국의 안보를 굳건히 지원하며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협력을 지속했다. 또한, 미국은 한국의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적인 지원 노력에 동참하는 등 다방면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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